코카콜라의 역사, 코카콜라가 미국의 브랜드가 되기까지!

오늘은 콜라의 역사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하는데요..

 

콜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카콜라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음료 하나가 어떻게 세계인이 즐기는 음료가 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과정에서 어떠한 노력들이 기여를 했고 그 노력들이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여러번의 부침과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훌륭히 극복해 내며..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죠..

 

대표적으로..

 

코카콜라가 겨울철 판매증진을 위해 내 세운 마케팅이 바로 산타클로스를 활용한 마케팅 입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뚱뚱하게 나온 배에 인자한 얼굴.. 그리고, 빨간옷에 큰 벨트를 멘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오로지 코카콜라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 입니다.

 

원래의 산타클로스는 빨간옷을 입지도 큰 벨트를 메지도 않았으며.. 더더욱.. 인자한 모습은 아니었죠.. 산타클로스의 원형을 따라가 보면 깡 마른 수도사의 이미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친근한 이미지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바꾸었고.. 대 성공을 거두었으며..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산타클로스가 가진 현재의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것입니다.

 

 

콜라의 시작은 숙취제거제 였다.

 

세계 제 1의 탄산음료 코카콜라 역사의 시작은 다소 쌩뚱맞게도 음료가 아니라 숙취제거제로서 약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여기에 탄산도 들어가 있지 않았죠..

 

콜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세명이 있는데 바로 첫번째가 이러한 숙취제거제로서 콜라를 만든 '존 펨버튼(Jhon Pemberton)' 입니다.

 

그는, 1886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두통과 숙취제거를 위해 몇가지 재료를 섞어 콜라의 원형을 만들었고 친구의 제안으로 코카콜라 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 시켰습니다.

 

코카콜라라는 이름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당시, C가 여러번 들어가 있는 브랜드명이 지면광고에 좀더 예쁘게 나오고 소비자에게 쉽게 인식이 된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100년이 넘어가도록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을지.. 그 친구는 알았을까요? ^^

 

여기에..

 

여러 약사들에게 코카콜라를 판매하던 펨버튼은 이를 구매한 어느 한 약사가 탄산을 넣어 마신 후에 그 맛과 효과가 더 좋다고 느껴 탄산을 넣을 것을 제안하면서 지금의 코카콜라가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현재의 코카콜라 맛은 탄산을 넣기 시작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은 비슷한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이러한 코카콜라에 대한 브랜딩을 했고 그 맛을 거의 완성시킨 펨버튼은 불과 코카콜라가 완성된지 2년 후인 1888년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콜라, 음료로 다시 정의 되다.

 

그때의 달러가치와 지금의 달러가치는 물론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탄생한 코카콜라는 펨버튼의 가족에 의해 단돈 2,300달러에 매각이 됩니다.

 

바로, 콜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두번째 인물.. 바로 '아사 캔들러(Asa Candler)'라는 인물에게 말이죠.. 캔들러는 코카콜라를 인수했을 당시 20대의 젊은 약제사였지만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캔들러는 코카콜라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중요한 의사결정을 몇가지 했죠..

 

- 숙취해소제에서 음료로 카테고리를 다시 정의

- 코카콜라 제조법을 회사의 비밀금고에 넣고 핵심인물 3인에게만 그 비밀을 알게 함

- 곡선형의 코카콜라 용기를 최초로 만듦

- 도매업자(보틀러)에게 프랜차이즈를 줌으로서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구축

 

코카콜라의 제조법이 개인적으로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

 

음료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개발부원들의 음료개발 과정을 어느정도 알고있는지라.. 음료라는게 마법의 가루.. 뭐.. 이런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몇가지 원료를 선택하고 이를 배합하는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죠.. 실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면 코카콜라를 다른 콜라와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절대다수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을 한 것은 그의 뛰어난 마케팅 수완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소비자들은 한 것이죠..

 

 

코카콜라, 세계로 뻗어 나가다.

 

캔들러의 시대에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대중적인 음료 중 하나로 발돋움 하게 됩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처럼 미국 문화의 아이콘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꽤 괜찮은 음료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인식되었죠.. 그러나, 미국 내에서도 아직 코카콜라 라는 음료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되었고.. 외국에서는 거의 알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코카콜라가 세번째 도약을 합니다. 바로 1923년 코카콜라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어네스트 우드러프(Ernest Woodruff)'에 의해서 입니다.

 

캔들러는..

 

그럭저럭 잘 나가던 코카콜라 경영을 가족에게 맡기게 됩니다. 1916년 애틀란타 주지사에 출마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였던게.. 그들은 캔들러와 상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2,500만 달러에 우드러프에게 넘기게 됩니다.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돈이었지만.. 지금을 생각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우메한 의사결정이기도 했죠..

 

코카콜라를 인수한 우드러프 집안은 여전히 코카콜라의 대주주들 중 하나로 코카콜라의 경영에 일부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드러프는 이러한 콜라의 역사에서 코카콜라를 세계적인 제품.. 미국의 문화를 파는 제품으로 만든 1등 공신입니다.

 

우드러프는 당시 2차 세계대전을 마케팅에 적절하게 활용해 코카콜라를 미국문화의 상징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마케팅이 비윤리적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죠.. 우드러프는 정부와의 딜을 통해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연합군에게 콜라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장병들의 호응이 좋자 원할한 공급을 위해 전쟁 시기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40여개에 달하는 음료공장을 짓게 됩니다.

 

공장이 지어진 현지에서도 코카콜라는 유통이 되었고 세계대전 기간.. 연합군은 미국의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전쟁을 치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귀향한 군인들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콜라를 즐기게 됩니다. 그들의 가족들까지 코카콜라를 알고 마시게 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말이죠..

 

코카콜라라고 하면, 맥도날드와 함께 미국의 상징처럼 여겨지죠.. 이는 바로 세계 2차대전이 계기가 되어 전 세계에 보급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드러프의 또다른 중요한 의사결정이 바로.. 똑같은 맛, 똑같은 브랜드를 고집했다는 점입니다. 우드러프는 미국에서 코카콜라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유럽으로의 수출을 모색합니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맛을 변형시키고 용기의 모양도 변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드러프는 코카콜라는 미국의 문화를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곳이든 똑같은 맛.. 똑같은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켰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코카콜라만의 전통이자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요즘 코카콜라는 현지 유명 배우들을 활용하는 마케팅을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광고컨셉은 동일합니다. 이와 더불어 홍보, 제품, 유통 등에 있어서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결국 세계인들에게 어필을 했고.. 코카콜라는 세계 제 1의 청량음료로 등극하게 됩니다.

 

오늘은 콜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세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봤는데요..

 

코카콜라는 경영과 마케팅적 관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는 회사입니다. 대학의 경영사례 연구에서는 빠지지 않고 몇번씩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말이죠.. 코카콜라의 역사 자체가 마케팅의 역사이고 또한 성공한 기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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